가계대출 고삐에 풍선효과 우려
은행-비은행 간 규제 차이 좁혀야
당국 행정지도 등 선제조치 제언
금융당국과 은행권이 수도권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가계대출 관리에 고삐를 조이면서 2금융권으로 대출 수요가 옮겨가는 ‘풍선효과’가 우려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보험사와 상호금융권을 중심으로 2금융권 주담대 잔액이 증가할 수 있다며 필요한 경우, 추가적인 규제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4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상호금융권과 보험업권을 중심으로 2금융권 전체의 가계대출 증감과 대출 신청 건수 등 선행지표를 매일 점검 중이다. 당국 관계자는 “9~10월 중 개별 금융사에서 내부 관리목적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산출하면 그 결과를 바탕으로 좀 더 정밀하게 지표를 살필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이 2금융권 수시 점검에 나선 것은 은행권에서 거절당한 대출수요가 2금융권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됐기 때문이다. 앞서 이달 1일부터 미래 금리변동 위험을 반영한 스트레스 DSR 2단계가 시행됐다. 금융당국은 은행권의 주담대와 신용대출, 2금융권의 주담대에 스트레스 금리 0.75%포인트(p)를 적용했고, 추가로 은행권이 취급하는 수도권 주담대에 한해 1.20%p를 상향해 규제를 강화했다. 규제가 덜한 2금융권으로 대출수요가 옮겨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2금융권에 대한 규제 변화 등을 통해 금융당국이 일관된 가계대출 증가세 억제 메시지를 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풍선효과의 가장 큰 원인은 은행권과 비은행권 간 규제 차익이기 때문에 적어도 주담대에 한해서는 2금융권 규제도 강화해야 한다”며 “1금융권에서 주담대를 받지 못해 2금융권으로 가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주택 시장이 과열돼 있다는 뜻이고, 거시건전성 관점에서 부채의 질이 떨어지는 문제도 생길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연구기관 관계자 역시 “규제를 덜 받는 영역에서 대출을 일으키는 것은 소비자 입장에서 합리적인 선택”이라면서도 “수도권 아파트 시장으로 과도하게 유동성이 공급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은행권과 비은행권 간 규제 차이를 줄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혁준 나이스신용평가 금융평가본부장은 “만일 보험 등 일부 업권에서 주담대를 과도하게 내주는 시그널이 포착될 경우, 금융당국이 행정지도 등의 조치를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다만, 저축은행의 경우 계속되는 적자 상황에서 자기자본비율을 방어해야 하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을 정리 중이라 무리하게 대출을 늘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며 “캐피탈과 신용카드사의 업황 역시 자산을 대폭 늘리면서까지 대출수요를 흡수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라고 부연했다. 2금융권의 업황이 대체로 좋지 않아 공격적인 대출 영업은 어렵기 때문에 2금융권으로의 쏠림현상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시각이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가격 상승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 등으로 8월부터 전국적으로 부동산 거래가 줄고 있다”며 “부동산 거래가 주춤한다면 대출의 증가 폭도 줄어들 것이기에 정부가 2금융권 관리에 나서야 하는 상황까지 오지 않을 수 있다”고 예상했다.
금리 인하에 따른 시장 상황 변화 등을 지켜봐야 한다는 관점도 있다. 정희수 하나금융경영연구소장은 “기준금리가 인하하면 스트레스 DSR 규제 효과가 커지고 이에 따른 대출수요 정도 등이 달라질 수 있어서 지금 상황에서 정확한 판단은 어렵다”면서도 “금리하락이 시작되면 주택에 대한 투기적 수요를 어떻게 억제할 것인가가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금융당국은 아직 2금융권으로의 풍선효과는 우려할만한 수준으로 현실화하지 않았다면서도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이날 열린 ‘가계대출 실수요자 및 전문가 현장간담회’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2금융권의 주담대 상담·신청 건수 등 선행지표로 보면 걱정할 정도의 풍선효과는 현실화하지 않았다”면서도 “상호금융 등 업권과 소통하고 계속 점검하며 규제 변화 필요성을 살필 것”이라고 설명했다.
2금융권으로 주담대 수요가 옮겨가는 풍선효과는 앞서 2021년에도 있었다. 당시 상반기 부동산 시장 불안정, 코로나19 재확산 등의 영향으로 가계대출 증가세가 급등하자 금융당국을 비롯한 정부는 10월 ‘가계부채 관리 강화 방안’으로 DSR 규제 강화를 발표했고 같은 해 11월에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관리에 나섰다.
관리방안 발표 후 2금융권 주담대 잔액 증가 규모는 은행권과 반대로 움직였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은행권과 비은행권의 주담대 잔액은 각각 전년 동기 대비 9.2%, 7.6% 증가했다. 이후 2022년 은행권의 주담대 잔액은 1년 새 2.3% 증가에 그쳤지만, 비은행권은 9.4%로 전년보다 증가 폭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