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셀러(screen bestseller)란 영화의 흥행으로 인기를 얻게 된 원작 소설을 말한다. 소설 원작의 영화가 선사하는 묘미는 글자로만 접했던 이야기를 구체적인 이미지로 확인한다는 데 있다. 원작과 영화의 차이점을 비교하면서 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긴 추석 연휴에 소설과 영화를 함께 감상하는 건 어떨까. 흥행에 성공한 소설 원작 영화들을 살펴보자.
2007년 추석 연휴에 개봉한 황동혁 감독의 '남한산성'은 김훈 작가가 쓴 동명의 소설을 바탕으로 했다. 영화는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으로 대피한 인조(박해일)와 그 신하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청과 화친해야 한다는 주화파 최명길(이병헌)과 결사 항전을 주장하는 척화파 김상헌(김윤석)의 대립을 카메라는 시종일관 건조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 같은 카메라의 시선은 원작이 갖고 있는 서늘한 단문의 매력과 허무함이 깃든 분위기와 조응한다.
신하가 군사들의 식량이 부족하다고 보고하자 인조는 "아껴서 오래 먹이되, 너무 아끼지는 말아라"라고 명한다. 영상 김류(송영창)가 청과 내통한 혐의를 받는 최명길의 목을 베자고 건의하자 인조는 "영상의 목을 베라는 상소도 있소"라며 일갈한다. 이처럼 묘한 헛웃음을 자아내는 대사를 관찰하는 것도 영화의 묘미다. 영화음악의 거장 사카모토 류이치가 작곡한 '출성'이라는 제목의 곡도 영화의 분위기를 살리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배우 전도연에게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의 영광을 안긴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은 이청준 작가의 소설 '벌레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다. 신애(전도연)는 사별한 뒤 아들과 함께 남편의 고향 밀양으로 이사를 온다. 그는 동네 사람들에게 무시당하지 않으려 부자인 척하며 땅을 알아본다. 그게 화근이 되어 아들이 다니던 유치원 원장의 표적으로 찍힌다. 원장은 아들을 유괴한 후 돈을 요구하지만, 신애에게는 그 돈이 없다. 결국 아들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다.
세상 전부라 여겼던 아들을 잃고 절망하는 신애는 동네 주민의 권유로 교회에 다닌다. 안정을 되찾은 신애는 원장을 용서하기 위해 교도소를 방문하는데, 원장 역시 기독교에 귀의해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았다고 말한다. 이 말에 신애는 충격을 받고 쓰러진다. '밀양'은 이청준의 원작을 훌륭하게 각색하며 종교적 구원의 본질을 이야기한다. 신애의 곁에서 영화의 제목처럼 '비밀스러운 햇빛'으로 기능하는 종찬(송강호)을 지켜보는 것도 영화의 주요한 재미다.
NASA 소속 화성탐사대는 모래폭풍을 만나 황급히 탈출을 시도한다. 탈출 과정에서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는 혼자 화성에 낙오된다. 생물학자인 그는 화성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주선 내부에 비닐하우스를 조성한 뒤 생존에 필요한 감자를 심는다. 수소를 태워 식수를 만드는 등 고군분투한다. 화성의 모래 언덕 위에서 먼 곳을 바라보는 와트니의 모습은 군중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현대인의 고독과 맞물리며 묘한 정서를 자아낸다. 비현실적 공포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얘기다.
'마션'은 앤디 위어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흙과 물을 제조하는 방식이나 결말 부분에서 와트니를 구조하는 방식 등에서 원작과 영화는 약간의 차이를 드러낸다. 특히 와트니가 구조될 때의 순간이 그러한데, 영화는 이 장면을 드라마틱하게 묘사하기 위해 다소 극적인 연출 방식을 동원한다. 이 영화의 묘미는 무엇보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와트니의 모습을 지켜보는 데 있다. '인터스텔라', '그래비티' 등과 함께 우주 SF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