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전 경고, 비현실적으로 들리지 않아”
양극화·편협성·무기 보급이 만든 혼란
다른 서구권도 정치 분열 진통
미국 대통령선거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암살 시도가 두 차례나 발생하면서 한때 세계의 등불로 여겨졌던 미국 민주주의가 한계에 다다랐다는 우려가 널리 퍼지고 있다. 심지어 11월 대선 이후 미국이 내전의 소용돌이에 빠질 수 있다는 불안도 고조되고 있다고 17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미국 비밀경호국(SS) 요원들이 15일 플로리다주 웨스트팜비치 트럼프인터내셔널 골프클럽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암살하려던 용의자를 발견해 저지했다. 이후 용의자가 차량을 타고 달아났다가 고속도로에서 체포됐다.
용의자는 58세의 라이언 웨슬리 라우스다.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으로부터 약 300여 m 떨어진 골프장 외곽 덤불 사이에서 무장한 채 소총을 겨누고 있었다. 사건 초기에는 해당 소총이 AK-47이라고 알려졌지만, 이후 SKS 계열로 확인됐다.
용의자는 2020년 엑스(Xㆍ옛 트위터)에 올린 게시물에서 “2016년 트럼프에게 투표했지만, 환멸을 느꼈다”라며 “그가 사라지면 기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 사건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7월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 유세 현장에서 피격을 당해 생명의 위협을 받은 지 두 달 만에 일어났다.
일각에서는 11월 대선이 무사히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피격 사건 이전만 해도 가능성 낮은 ‘블랙스완’ 정도로만 여겨지던 미국 내전에 대한 경고가 이제는 현실성 있게 들리게 된 것이다.
프랑스의 미국 외교 분야 전문가인 코렌틴 셀린은 “미국 정치의 잔인함으로 인해 대선이 평화롭게 끝날 수 있을지 의문을 품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2021년 1월 6일 의사당 습격 사건으로 매우 놀랐고, 그 반란으로 시작된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다”며 “11월 5일 선거는 그것이 어떻게 진행될지 결정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독일 저명 주간지 디차이트의 국제 문제 담당 온라인 편집자인 카르스텐 루터는 미국 민주주의의 존립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했다. 그는 “내전에 대한 경고가 더는 완전히 비현실적으로 들리지 않는다”며 “마치 언젠가는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처럼 진부해보이기까지 한다”고 언급했다.
물론 이러한 분열과 정치 양극화는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프랑스, 독일 등 다른 서구 사회도 정치적으로 분열돼 있으며 트럼프 전 대통령과 같은 메시지를 내세우는 극우정당이 부상하고 있다. 5월에는 슬로바키아 로버트 피코 총리가 총격으로 중상을 입기도 했다. 다만 미국의 경우 느슨한 총기 규제로 인해 정치적 경쟁자를 실존적 적으로 여기는 정치적·공적 담론의 타락이 더욱 심화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 니카라과 대선 후보이자 버지니아대의 연구원인 펠릭스 마라디아가는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이보다 더 위험할 수는 없다”며 “양극화, 편협성, 미국 내 광범위한 구경 무기 보급으로 인해 완벽한 폭풍이 일어났다”고 분석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제 연구기관인 트레이드콜렉티브의 레보항 페코 선임 연구원은 “미국의 일상이 군사화되고 있다”며 “이것이 본질적으로 이번 선거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디 주세페 이탈리아 의원은 “결국 진정한 최후의 승자는 미국 국민”이라며 “미국을 통치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후보를 몰아내고 싶다면 정의나 칼라시니코프(AK-47)가 아닌 민주주의 체제에서 그를 물리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능성이 지극히 낮아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지만, 일단 발생하면 엄청난 충격과 파급효과를 불러오는 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