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경고에 새마을금고도 관리 돌입
풍선효과 방지ㆍ실수요자 보호 '과제'
가계부채. 최근 금융권 이슈를 하나 꼽으라면 빠질 수 없는 단어입니다. 이달 10일 있었던 금융위원회 대상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가계’라는 단어가 총 70차례 언급됐습니다. 모두 가계대출이 과도하고 서민의 가계부채 부담이 증가했다거나 관련 정책의 일관성이 필요하다는 맥락에서 언급됐습니다. 이후 17일 금융감독원을 대상으로 한 국감에서도 총량규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적용 등 관련 질의가 오가면서 ‘가계’가 의원들과 이복현 금감원장의 입에 총 58번 오르내렸습니다.
‘가계’는 가족을 중심으로 형성된 가정 또는 그러한 가정이 수입과 지출을 통해 꾸려 나가는 경제생활을 의미합니다. 단어의 뜻에서 알 수 있다시피 가계대출 정책은 국민 개개인의 일상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습니다. 특히 ‘내 집을 마련하려면 빚을 내는 것’이 당연해진 지금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자본시장연구원의 ‘국내 가계부채 현황 및 위험요인’ 보고서에 따르면 부동산 구입·보증금 마련을 위해 대출받은 가구 비율은 2012년 55%에서 2022년 67%로 높아졌습니다.
더 큰 문제는 가계부채 부담이 개인의 삶에 큰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나아가 우리나라 경제의 안정성을 위협하는 ‘시스템 리스크’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가계부채가 과도하면 예상치 못한 소득감소, 금리 상승 등 충격에 대응할 수 있는 여력이 줄어들어 부실로 이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빚이 많은 사람은 수중에 있는 돈을 쉽게 쓰지 못하기 때문에 소비도 위축되고, 경제 잠재성장률 하락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큽니다. 금융당국이 가계부채를 ‘철저히 관리하겠다’는 메시지를 쉬지 않고 내는 이유입니다.
금융당국이 ‘바람직한 가계대출 관리 방안’으로 ‘금융사의 자율 조치’를 꼽은 뒤 제일 먼저 움직이기 시작한 금융사는 주요 시중은행입니다. 사람들 대부분이 다른 금융사에 비해 금리가 낮은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에서 주택담보대출 등 가계대출을 받기 때문입니다.
주요 은행들은 앞다퉈 금리를 여러 차례 인상하고, 대출 심사를 강화하는 등 가계부채 안정화 관리에 나섰습니다. 이런 모습은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달 말 신한은행은 대출모집인 접수를 한시적으로 중단하고, 신규구입자금 주담대 우대금리를 삭제했으며 생활안정자금 주담대 금리를 최대 0.2%p 인상했습니다. 우리은행도 이달 초 주담대와 전세대출 등의 금리를 0.15~0.20%p 올렸습니다.
‘가계부채 관리’의 공은 시중은행에 이어 지방은행과 상호금융(새마을금고·농협·신협·수협·산림조합), 저축은행 등 2금융권으로 넘어왔습니다. 주요 은행들이 대출을 조이면 자금 수요는 자연스레 아직 규제가 덜한, 대출 문이 열려 있는 곳으로 쏠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지방은행으로의 가계대출 쏠림 현상은 이미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방은행 4곳(경남·전북·광주·iM뱅크)의 주담대 잔액은 8월 말 기준 29조3673억 원에서 9월 말 29조7337억 원, 10월 24일 기준 30조3711억 원으로 약 두 달 새 3.42% 올랐습니다.
10월만 따지면 지방은행 4곳의 주담대 잔액은 한 달 새 2.14% 증가했습니다. 이는 9월 한 달간 증가 폭인 1.25%보다 0.89%p 확대된 수준입니다. 시중은행 주담대 잔액이 10월 한 달 새 0.08%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지방은행의 주담대 증가세가 두드러집니다.
금융당국은 이 같은 가계대출 ‘풍선효과’가 커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습니다. 금융위는 이달 11일 가계부채 점검회의에 이어 23일에도 추가 회의를 열었습니다. 은행권의 가계대출 자율 관리 강화로 인해 풍선효과가 우려됨에 따라 상호금융,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과 지방은행, 인터넷전문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세를 점검·관리하기 위해서입니다.
권대영 금융위 사무처장은 회의에서 “은행권 스스로 가계대출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대출 수요가 다른 업권으로 옮겨갈 수 있으나 보험·상호금융 등 제2금융권과 지방은행, 인터넷 은행에서 공격적 영업 행태를 보이는 것은 다소 문제가 있다”며 “특히 일선 창구에서 주담대 중심의 과당경쟁이나 상환능력을 초과하는 과잉대출 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해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습니다. 시중은행에서 충족되지 못한 주담대 수요가 타 금융사로 밀려올 수 있지만, 주담대 위주의 손쉬운 영업보다 중·저신용자 자금공급에 차질이 없도록 하라는 경고를 한 셈입니다.
지방은행도 시중은행의 뒤를 이어 주담대 금리 인상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iM뱅크는 주담대 금리를 지난달부터 이달까지 세 차례 올렸습니다. 9월 4일 대면 상품 금리를 연 3.85~4.55%로 올리고 같은 달 13일 연 4.5~5.2%로 한 차례 더 인상했습니다. 또, 이달 15일에는 가산금리를 0.16%p 올렸습니다.
경남은행도 지난달 말부터 이달까지 세 차례에 걸쳐 대출 금리를 총 0.75%p 올렸습니다. 또, 지난달 말부터 수도권에 한해 비대면 주담대 접수를 잠정 중단하기도 했습니다. 부산은행은 이달 21일 대면 주담대 금리를 0.2%p 높이고, 비대면은 우대금리를 0.50%p 축소하는 방식으로 대출 금리를 올렸습니다. 이달 중순 금리를 0.16%p 올린 전북은행 관계자는 “11월 중 0.3%p 정도 추가 인상 계획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새마을금고도 가계대출 관리를 위한 선제 조치를 내놨습니다. 금융위의 가계부채 점검회의 추가 개최 다음 날인 이달 24일, 새마을금고중앙회는 한시적으로 금액에 상관없이 모든 중도금 대출을 사전검토하겠다고 했습니다. 새마을금고가 은행권이 가계대출을 축소한 사이 집단대출을 늘리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관리를 강화하겠다는 취지입니다. 이 밖에 다주택자의 주택담보대출 취급 제한, 대출모집법인 관리 개선·강화, 과당 금리경쟁 지도 강화 등을 통해 ‘실수요자 중심의 가계대출 정책’을 펼치겠다고 했습니다.
앞으로 가계대출 이슈와 관련해서 지켜봐야 할 사항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금융당국의 경고와 금융사의 자율 조치가 실제 효과가 있는지’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실수요자 수요를 충분히 충족하는가’입니다. 가계대출 관리 조치를 강화하면 ‘선의의 고객 피해’라는 부작용이 발생하기 쉽습니다. 실제로 은행들이 9월 이후 금리를 올리는 등 자체적인 관리 조치에 나서자 ‘투기를 위한 대출이 아닌, 집을 마련하기 위해 대출이 절실한 실수요자가 외면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이에 은행들은 ‘실수요자 보호 심사전담반’을 구성, 운영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예컨대 1주택 소유 세대가 기존 주택을 처분하고 새로 집을 사려는 목적으로 주담대를 받는 경우, 전담반 심사를 통해 예외를 허용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금융당국 수장들 역시 실수요자를 고려한 규제 적용을 약속했습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달 열린 ‘가계대출 실수요자 및 전문가 현장간담회’에서 “은행권 자율적 심사 강화 조치 이전에 대출신청을 접수했거나 계약을 체결한 경우, 고객 신뢰 보호 차원에서 예외를 인정해주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24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전세대출에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적용 여부를 검토하면서 실수요자에 대한 영향을 충분히 고려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정책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정화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소비자들이 대응할 수 있게 예측 가능한 수준으로 시간을 두고 예고가 되면 (규제에 대한) 불만이 적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김현태 한국금융연구원 금융안정연구센터장 역시 “(가계부채) 정책이 계속 변할 수 있다는 시그널을 주는 것은 거시건전성, 금융안정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최근 ‘시행’에서 ‘유예’, 다시 ‘조건부 시행’ 등 적용 계획을 여러 차례 바꿨던 ‘디딤돌 대출 취급 제한 규제’가 일관성, 예측 가능성을 모두 잃어버린 사례입니다. 이처럼 가계대출 정책이 시장에 혼란을 가져오는 경우, 방향성이 올바를지라도 소비자들의 지지를 받기 어렵게 됩니다.
가계부채 관리에는 금융사뿐만 아니라 금융소비자 개인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6일 열린 가계부채 브리핑에서 금융사의 자율 조치를 강조하면서 동시에 국민에게도 ‘감당 가능한 만큼 대출을 받아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소비자들이 이러한 당부에 따라 움직이려면 정책에 대한 신뢰 확보는 기본 중의 기본일 것입니다. ‘가계부채 비율 하향 안정화’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금융당국은 풍선효과를 철저히 관리하면서도 실수요자 피해를 최소화해야 합니다. 또,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갖춘 정책으로 금융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점을 잊지 않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