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은 기본적으로 모든 이들을 위한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누구도 차별과 혐오에 노출돼선 안 된다고 얘기하는 법이기 때문에 종교인으로서도 당연히 제정해야 하는 거죠"
차별금지법제정연대(차제연)에 참여하고 있는 자캐오 대한성공회 정의평화사제단 신부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돼야 하는 이유를 이같이 설명했다.
자캐오 신부는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그는 한국 개신교회의 주류인 장로교에서 시작해 순복음교회를 거쳐 2003년 성공회 신자, 2012년 사제가 됐다. 현재는 용산나눔의집과 길찾는교회에서 미등록 이주민·성 소수자 등 차별받고 소외된 계층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투데이가 12일 자캐오 시부와 인터뷰를 진행한 용산 나눔의집 한쪽에도 성 소수자의 상징인 6색 무지개 깃발과 십자가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성별·장애·성적지향·학력 등 23가지의 사유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다. 그러나 논쟁은 이 법안이 다루는 다양한 차별 요인 가운데 주로 '성 소수자'에 대한 것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다. '성 소수자 보호를 위한 당위적 내용을 담고 있다'는 찬성론과, '동성애를 조장하고 동성애 반대와 관련된 신앙·양심·학문·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반대론이 맞서고 있다.
자캐오 대한성공회 신부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신부인 그가 성 소수자의 인권을 지지하고 이들과 연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캐오 신부는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촉구하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 참여하게 된 계기를 그의 종교적 믿음을 통해 설명했다. 그는 "제가 믿고 고백하는 신은 모든 존재를 동등하고 독특하게 만들었다. 모든 존재가 서로 존중하고 공생할 수 있는 사회가 신이 우리에게 바라는 사회고 세상"이라며 "소외와 불평등 문제에 대항하고 환대와 연대, 정의와 해방 등을 이뤄나가는 것이 교회의 중요한 사명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현재 차제연에는 자캐오 신부가 있는 대한성공회 정의평화사제단 나눔의집협의회을 비롯해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원불교인권위원회 등 종교 단체도 여럿 포함돼 있다. 이를 두고 자캐오 신부는 "기본적으로 종교와 사회는 연동된다"며 "종교가 시민사회의 일원으로 참여하는 것은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기본적으로 모든 이들을 위한 법"이라며 "누구도 차별과 혐오에 노출돼선 안 된다고 얘기하는 선언적인 법이기 때문에 당연히 제정해야 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모든 이들의 공존과 공생, 그리고 혐오와 차별에 반대하는 맥락에서 종교인이라면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미 개별적인 차별금지법이 존재하는데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것은 과한 것 아니냐는 일부 주장에 대해선 "인간이라면 법안에 명시된 23개의 차별 금지 사유 중 하나에만 해당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며 "차별금지로 볼 수 있는 요소는 모든 인간에 해당할 수 있으므로 모두를 위한 법이라고 할 수 있다. 복합차별을 방지하는 맥락에서 과도하다는 해석은 당황스럽다"고 반박했다.
차별금지법이 동성애 반대의 자유 등 표현의 자유를 막는다는 주장에 대해선 "일부 개신교 집단을 비롯해 성 소수자분들을 표적화해서 반대하는 사람들의 이러한 주장은 '나에게 마음껏 이웃을 증오하고 증오를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막지 마'라는 얘기와 같다"며 "왜곡되고 잘못된 특권을 요구하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자캐오 신부는 '성 소수자'의 인권을 지지하는 종교인 중 한 명이다. 이에 대해 그는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과 권익을 지지하는 게 종교의 책임과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동성애자 등 성 소수자를 혐오하는 일부 보수 기독교계를 두고 "성 소수자의 성적 지향과 성별정체성을 문제로 삼는 것은 과도한 성서 해석과 적용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개인적인) 맥락에서 그렇게 얘기할 수는 있지만, 자신들의 해석이나 적용에 해당하지 않는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하려고 한다면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자캐오 신부는 "기독교를 비롯한 많은 종교는 오랜 세월 동안 실체가 없는 '허수아비 적'을 만들어 때리면서 내부의 결속력을 단단하게 하는 방식으로 조직을 유지한 역사가 있다"며 "성 소수자의 경우에도 위협이 되지 않지만 '혐오해야 돼', '차별해야 돼'라며 사람들을 선동하고 허수아비 적으로 만들었다. 또 내부에서 터져나오는 당연히 있어야 하는 질문들을 봉쇄하고 지도자들에게 유리한 교리로 종교 커뮤니티에 복속시키는 방식으로 활용해왔다"고 주장했다.
성서에서 '동성애'를 금지하는 대목이 있다는 일부 주장에 대해선 "과도한 해석과 정의에 동의하지 않는 입장"이라면서 "성서의 일부 문구를 근본주의적 교리로 이해해서 성 소수자에 적용하는 방식은 동의할 수 없다. 해석의 다름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 커뮤니티에서 해석하고 이해하는 내용을 과도하게 사회에 적용하려고 하는 것은 종교의 월권"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성서에는 기본적으로 약자들을 끊임없이 돌보고 섬기는 것이 곧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해석해온 맥락이 있다"며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 성 소수자는 권력관계에서 약자의 맥락에 있다. 성서의 맥락에서 이해하면 당연히 성 소수자는 성서에 의해 옹호되고 함께 해야 하는 존재"라고 강조했다.
차별금지법은 10년이 넘도록 정치권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앞서 17~19대 국회에서는 발의된 차별금지법들이 번번이 입법절차에 오르지 못하고 폐기됐다. 20대 국회에선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법안을 준비했으나 최소 10명이라는 공동 발의자를 채우지 못해 발의조차 실패한 바 있다.
한편, 차별금지법을 발의한 정의당은 11일 한 달간의 '차별금지법 집중행동'을 선포했다.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의 날'까지 진행되는 연말 입법국회에서 실질적인 차별금지법 논의를 끌어내겠다는 것이다. 반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종교계 반발을 의식해 차별금지법 논의에 소극적인 상황이다.
정치권의 소극적인 태도에 대해 자캐오 신부는 "사회적 합의를 주도해야 할 정부나 법 제정의 책임과 힘을 가진 여당이 미온적인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그는 "정부·여당이 차별금지법뿐만 아니라 다양하게 쟁점이 많은 이슈와 논란이 될 때마다 항상 '사회적 합의'라는 수사 뒤에 숨는다"며 "사회적 합의를 적극적으로 주도해야 할 정치적 책임과 힘을 가진 집단인데 그걸 망각하고 있다.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이뤄내라고 국민이 압박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된 이후의 방향에 대해선 "차별금지법은 사실 느슨하고 선언에 가까운 항목들로 구성돼 있어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한계도 많은 법"이라며 "상대적 약자나 사회적 소수자들이 소외와 불평등을 넘어서 안전하고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시민들이 다원화된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자캐오 신부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문제를 놓고 모두에게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