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시장, 공격적 경기부양책에 물량부담까지 더해져
유럽 코로나19 재확산+미·중 갈등 부각으로 혼조세 가중
‘경제가 좋아지면 위험자산, 나빠지면 안전자산.’
경제학 교과서에나 봄직한 원론적 수준의 경제상식이다. 허나, 최근 국내외 자본시장 상황을 보면 이같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 모습이다. 국내외 채권시장과 달러화·원화 등 환율시장, 주식시장이 등락을 거듭하며 왕복달리기 장세를 연출하고 있지만 상식과 반대로 움직일때가 많아서다.
이는 멀게는 글로벌 금융위기, 가깝게는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풀린 유동성에 자본시장이 그만큼 취해 있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2013년 미국 연준(Fed)이 양적완화를 축소하는 움직임에도 테이퍼 텐트럼(taper tantrum·긴축발작)을 겪었다는 학습효과도 있다.
여기에 재정당국의 공격적인 부양책, 코로나19 재확산, 미·중 갈등까지 겹쳐지면서 금융시장 셈법이 복잡해져 갈피를 못잡는 부문도 있다.
◇ 인플레 우려만은 아니다 = 최근 금융시장 불안감이 시작된 시점은 지난해말 미국채 금리가 상승하면서부터다. 당시 빅피겨(큰숫자)로 여겨졌던 미국채 10년물 금리 1% 돌파가 가시권에 들어오면서 미 증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렇잖아도 코로나19로 풀린 유동성으로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사상 처음으로 3만선을 웃돌며 고공행진을 보이던 때였다. 주가가 제대로 된 조정없이 가파르게 너무 많이 올랐다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한 것이다.
공격적인 재정부양책을 약속한 조 바이든 후보가 미국 대선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민주당이 상하원 의원마저 장악하는 소위 블루웨이브(blue wave)가 실현되면서부터는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1월초 90을 밑돌며 2년10개월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던 달러인덱스는 2월초 91을, 3월초 92를 연거푸 돌파하며 4개월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달러인덱스란 주요 6개국 통화대비 달러화의 평균적인 가치를 나타내는 지표로 상승하면 그만큼 달러화가 강세라는 의미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달초 1조9000억 달러에 달하는 코로나19 대응 경기부양책에 서명했다.
이같은 움직임에 국내 금융시장도 흔들렸다. 원·달러 환율은 3월10일 장중 한때 1145.2원까지 치솟아 4개월만에 최고치를 경신했고, 주식시장에서 3000선을 웃돌던 코스피도 10일 기준 2958.12를 보이며 2개월만에 최저치를 보였다. 코스피는 24일에도 3000선을 밑돌았다(2996.35).
채권시장도 부진했다. 국고채 10년물 금리는 15일 2.152%를 기록하며 2년4개월만에 최고치를 보였다. 특히 단기물보다 장기물 금리가 더 가파르게 올라 장단기금리차는 18일 101.7bp(1bp=0.01%p, 국고채 10년물과 3년물 기준)까지 벌어져 10년2개월만에 최대치를 경신했다.
이는 대외요인 외에도 4차 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추가경정예산 편성과도 맞물려있다. 적자국채 발행이 불가피해 채권시장엔 수급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경제에 대한 자신감도 내비치고 있다.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는 올 경제성장률을 6.5%로, 물가상승률을 2.5%로 전망했다. 이는 종전(각각 4.2%, 1.8%) 전망치 대비 상향조정한 것이다.
한국은행 역시 시장에서 목을 메다시피한 국고채 단순매입 정례화 등에 대한 조치는 소극적이다. 이날 이주열 한은 총재는 기자들과의 서면질의 응답에서 “시장안정화 차원의 국고채 단순매입은 그 규모를 사전에 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금리 상승의 요인, 속도와 폭 등을 보아가며 결정한다”고 말했다.
경제에 대한 자신감도 강해졌다. 이 총재는 이날 “올해 국내 성장률은 종전 전망치보다 높아질 것”이며 “(소비자물가 전망치 역시) 지난 전망치보다 높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증권사의 채권담당 본부장은 “중앙은행들이 (그간 취했던 완화조치들을) 하나씩 줄이고 있다. 말로만일뿐 (실상은) 출구전략으로 가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실제 이 총재도 이날 남은 임기 1년 최대과제로 “이례적 완화조치의 정상화”를 꼽았다.
앞선 증권사 본부장은 또 “요며칠 장기물 금리가 하락하고 있지만, 최근 금리 급등과 장단기금리차 확대에 따른 저가매수 및 분기말 평가로 인한 종가관리(윈도우드레싱) 때문”이라고 전했다.
다만, 중앙은행들이 인플레 보단 고용이나 양극화를 더 우려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이에 따라 자본시장이 서서히 안정화를 되찾을 것이란 전망이다.
최석원 SK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지금 상황의 근본적 원인은 유동성을 많이 풀었기 때문”이라며 “중앙은행들이 금리인상까지는 아니더라도 테이퍼링 등에 나설 것”이라고 봤다. 다만 그는 “중앙은행들이 인플레보단 고용이나 양극화를 더 고민하는 것 같다. 지금 상황에서 금리를 올리면 수용하기 어려운 양극화가 발생할 수 있다”며 “시장도 안정화를 찾을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