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형제복지원 사건을 ‘국가에 의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규정하며 피해자들의 국가 대상 손해배상에도 물꼬가 트일 것으로 보인다. 다만, 피해자들이 형제복지원 박인근 원장 일가의 재산을 환수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아 보인다. 관련법을 만들어야할 국회가 미온적이기 때문이다.
25일 법조계에서는 박 원장 일가의 불법 축적 재산 환수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국회가 관련법을 제정하고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이상, 피해자들이 현 사법시스템 내에서 환수를 이끌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박 전 원장은 1992년 형제복지원과 관련 정신요양원 등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형제복지원 건물이 있던 부지를 227억 원에 매각하거나 호주에 회사를 설립해 골프장을 매입하는 등 재산을 늘려갔다.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의 국가 상대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 중인 한 변호사는 “형사 재판에서 원장의 범죄수익이 밝혀진 것도 아닌데 아무런 법 근거 없이 원장의 재산을 몰수하는 것은 불가하다”라고 말했다.
타인의 재산을 몰수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형사상 벌금을 선고받거나 민사상 손해배상 등 재산 몰수 집행 근거가 필수적이다. 일부 금융 관련 법률은 강제 추징을 할 수 있는 범죄를 규정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근거 없이 재산을 환수할 수 없다.
전두환 씨의 재산 환수는 다르다. 전 씨의 재산 환수는 그로부터 피해를 입은 국민들이 전 씨를 대상으로 고소를 진행하고 재산을 환수하는 것이 아니다. 전 씨 미납추징금에 대한 국가의 재산환수다.
전 씨는 1997년 대법원에서 뇌물 등 혐의로 추징금 2205억 원을 선고받았다. 대법원에서 무기징역과 함께 추징금을 확정 판결 받아 재산 환수가 시작된 것이다. 이후 검찰은 무기명 채권과 차명계좌에 은닉된 전 씨의 재산을 환수했다.
이후 국회는 2013년 ‘전두환 추징법’이라 불리는 공무원 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 개정안을 만들기도 했다. 관련 범죄에 대해서는 재산 몰수가 가능하다.
하지만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박 원장에 대한 재산 환수를 추진하려면 국회의 특별법이 필요하다. 특별법은 공소시효가 끝났지만 추가적인 재산 환수가 필요하거나 재산 환수를 위한 절차를 보다 간단히 하기 위한 경우, 국회가 직접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국회는 수년째 이를 위한 특별법 제정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2019년 피해자들의 고통을 위로하고 치유하자는 내용의 형제복지원 특별법을 통과시켰지만 아직 박 원장 재산 환수에 대해서는 한 발도 나아가지 않고 있다.
이향직 형제복지원 서울경기 피해자 협의회 대표는 “재산환수법은 국회에서 해야하는데 국회에서는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며 “다행이 지자체에서 피해자 치료 같은 지원은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국회의 재산환수법 통과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진실화해위는 전날 형제복지원 사건과 관련해 “공권력이 직·간접적으로 부랑인으로 칭한 사람들을 형제복지원에 강제수용해 강제노역, 폭행, 가혹행위, 사망, 실종 등 중대한 인권침해가 있었음을 확인했다”며 “신체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등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훼손한 중대한 인권침해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는 권고사항에 △국가는 피해자와 유가족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 △국회는 유엔 강제실종방지협약 비준에 동의 △피해생존자들에게 아낌없는 지원 등을 담았다. 다만, 박 원장 재산 환수에 대한 내용은 포함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