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매수도 결국 빚 늘어나는 것
경매 낙찰금, 세입자에 우선 지급
공공매입 예산은 추경 통해 마련
전세보증비율 낮춰 불완전성 잡아야
정부가 전방위적으로 전세 사기 방지책을 내고 있지만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세대출을 재정비하고 보유세를 줄이는 등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는 전세사기 피해자를 구제하는 차원에서 주택의 경매 유예와 피해자 대상 저금리 대출을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로 확인된 2479가구 가운데 은행이나 저축은행, 신협·농협·새마을금고 등 상호금융회사 대출분에 대해 지난 20일부터 경매가 유예되고 있다.
정부는 전세사기 주택이 경매·공매로 나올 경우 낙찰 우선매수권을 피해자나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에 부여하는 한시적 특별법 제정에 나선다. 소유권이 제3자에게 넘어갈 경우 살던 집에서 내쫓길 수 있는 우려를 해소해 전세사기 피해자의 주거 안정성을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대책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목소리다. 경매 유예는 법적으로 강제할 길도 없을 뿐더러 금융사의 손실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금융사는 경매 절차가 지연되는 만큼 부실 대출을 떠안아야 한다. 또한, 경매·매각을 6개월 이상 유예하는 동안 지연 이자가 붙어 세입자들에게 돌아갈 보증금이 더 줄어들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경매로 보증금을 돌려받게 되면 가장 먼저 정부가 세금으로 가져가고, 은행이 떼가면 그 다음이 세입자”라면서 “세입자를 보호하고 싶다면 낙찰 금액이 세입자에게 우선적으로 돌아가게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우선 매수권 또한 전세 피해자에게는 반쪽짜리 대책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낙찰가가 시세의 절반에 가까운, 아무리 저렴한 가격이라고 하더라도 매입을 하기에는 자금 조달 능력이 부족한 데다 정부가 최저 0%대의 저금리 대출을 지원하더라도 결국 재산이 아닌 빚이 늘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존 보증금을 건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선매수권을 행사해도 선순위 채권자들이 배당을 받은 뒤 차례가 돌아오기 때문에 피해 세입자는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
공공임대주택으로의 매입 역시 기존의 사회적 취약계층을 위해 책정된 5조5000억원의 예산 내에서 진행하겠다는 것이라 턱없이 부족하고, 공공임대를 원하는 다른 수요자들의 기회를 박탈해 또 다른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는 이미 편성된 매입임대주택 예산을 투입해 경매 들어간 주택을 우선 매수해주겠다고 했지만 그 예산은 취약계층의 주거안정을 위해 마련된 것”이라면서 “국회에 올라온 특별법 공공매입 방안은 기존 예산이 아니라 추가경정예산안을 통해서라도 필요한 정부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태의 본질적인 원인 중 하나로 전세자금대출 관련 제도의 허점도 꼽혔다. 그동안 정부는 주택 매매의 경우 대출 규제를 통해 수요를 관리해왔다. 그러나 전세대출은 전세보증금의 최대 90%까지도 받을 수 있도록 풀어뒀다.
박춘성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전세자금대출 보증비율을 점진적으로 낮춰 전세계약의 불완전성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전세계약은 대출 계약과 매우 흡사한 데도, 과잉 대출에 대한 규제 적용이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예컨대 임대인이 주택담보대출비율(LTV) 규제 한도 40%만큼의 대출이 있으면 전세보증금이 주택가격의 40%라면 사실상 임대인은 80%를 대출받을 수 있다.
전세 사기 문제를 해결하려면 과도한 집값 하락을 막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정식 명예교수는 “정부가 적어도 빌라 등 서민 주택에 한해서는 대출 및 세금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