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하시코프·삼사라 이후 처음
긴축 마무리 단계, 빅테크 호실적 등 영향
주춤했던 미국 기업공개(IPO) 시장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주목할 만한 벤처 기업 상장이 끊긴 지 20개월 만에 대형 스타트업들이 다시 상장 절차에 나서면서 시장이 활기를 띠고 있다.
28일(현지시간) CNBC방송에 따르면 지난주 식료품 배달 스타트업 인스타카트와 마케팅 자동화 기업 클라비요가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상장을 위한 서류를 제출하고 본격적인 IPO 절차에 돌입했다.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일본 소프트뱅크그룹 자회사인 반도체 설계 기업 ARM이 21일 나스닥거래소 상장을 신청하면서 물꼬를 텄다.
이들 기업 모두 분야는 다르지만, IPO 시장 활성화라는 측면에서 투자자들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이들이 어떤 결과를 내느냐에 따라 다른 기업들도 4분기 상장 신청 대열에 합류할 것으로 보인다.
IPO 컨설팅기업인 클래스V그룹의 리세 바이어 창립자는 “다른 기업들은 상장 준비 기업들을 지켜볼 것”이라며 “일부 기업은 지난해 미뤘던 상장 절차를 완수하도록 자극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IPO 시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전염병 대유행)이 한창이던 2020년과 2021년 대호황을 누렸다. 미국 정부가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펼친 탓에 시장에 현금이 넘쳐났고, 상당수가 기업 자금으로 유입됐기 때문이다. 2020년 말 상장했던 소프트웨어 공급업체 스노우플레이크는 당시 주가매출비율(PSR)이 50배까지 치솟았다. PSR는 시가총액을 매출로 나눈 값으로, 그만큼 주가가 높았다는 의미다.
그러나 현재 스노우플레이크 PSR는 17배 아래서 거래되고 있다. 비슷한 시기 상장한 식품배달 업체 도어대시 주가 역시 2021년 최고치를 경신한 후 현재는 3분의 2 이상 하락했다. 증시의 전반적인 부진 속에 상장했던 기업들의 주가가 곤두박질치면서 굵직한 IPO도 2021년 12월 하시코프와 삼사라 이후 자취를 감췄다.
현재 시장에서 많은 관심을 받는 인스타카트의 경우 IPO 개시를 앞두고 기업가치를 큰 폭으로 낮춘 상태다. 2021년 초 390억 달러(약 52조 원)로 평가됐던 가치는 지난해 3월 390억 240억 달러로 낮아졌고 같은 해 연말까지 50% 추가 절하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올해는 사뭇 다른 시장 분위기가 감지된다. 상반기 뉴욕증시는 기술주를 중심으로 랠리를 보였고 그간 주가에 부담이었던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공격적인 긴축 행보도 끝에 다다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메타와 알파벳, 마이크로소프트(MS) 등 주요 빅테크는 2분기 시장 전망을 웃도는 호실적을 발표하며 경기침체 우려도 불식시켰다.
인스타카트 역시 기업가치 절하 속에 비용과 인력 감축을 단행하면서 5년 연속 흑자에 성공했다. 2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5% 증가한 7억1600만 달러를 기록했고 순이익은 같은 기간 800만 달러에서 1억1400만 달러로 급증했다. IPO 시장에서 인스타카트에 비해 덜 알려진 클라비요도 2분기 매출이 50% 증가하면서 흑자 전환했다.
지난주 상장을 신청한 이들 기업은 노동절이 지난 후인 9월 초 투자자 공모에 나서고 같은 달 중순께 상장될 것으로 보인다.
바이어 창립자는 “어느 시점이 되면 기업들은 시장 상황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멈추고 상장 시점을 결정해야 할 것”이라며 “시장에 나가 자신들의 가치를 입증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