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아미니 추모 시위로 체포된 모하마디 옥중서 평화상 수상자로
20년 만의 반복 수상에 “달라진 것 없다” 회의론도
바이든 “석방” 외쳤지만 현실성 떨어져
지난달 중순 필자가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인근을 지나던 중 세 단어를 외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림잡아도 2000명은 돼 보이는 인파는 지난해 9월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된 후 의문사한 마흐사 아미니의 1주기를 기리기 위해 공원에 모여있었다. 동시에 거리에서는 시위대가 경찰 통제 속에 아미니 영정사진을 든 채 가두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그는 “지난해 말 이란 정권은 인권 운동으로 체포된 시위자들에 대한 형을 선고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20명 넘는 시위자가 변호사 선임 없이 사형을 선고받았다”며 “이 가운데 6명은 이미 처형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마흐사가 죽은 지 1년이 지난 지금, 이란 정권은 조직적인 탄압을 지속하고 있고 우린 이란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위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하마디는 지금까지 인권운동으로만 13차례 체포됐고 5차례 유죄 판결을 받은 인물이다. 현재도 인권운동에 가담했다가 체포돼 수감 중이다. 이로써 그는 옥중이나 가택연금 중 노벨 평화상을 받은 다섯 번째 인물이 됐다. 또 2003년 이란 여성 인권운동의 대모인 시린 에바디에 이어 노벨 평화상을 받은 두 번째 이란 여성이라는 기록도 남겼다.
모하마디는 수상 후 뉴욕타임스(NYT)에 보낸 성명에서 “전 세계의 인정을 받음으로써 이란인들이 변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더 강력하게 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승리가 가까워졌다”고 밝혔다.
1972년 이란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모하마디는 1998년 인권 문제로 자국 정부를 비판했다가 처음으로 체포됐다. 이후에도 꾸준히 이란 여성 인권을 위해 목소리를 높인 그는 지난해 아미니 의문사 시위 후 체포돼 지금까지 감옥에 있다. 그는 줄곧 여성이 사회에서 받는 불평등과 감옥에서 당하는 성폭력 등을 고발해 왔다.
그의 남편이자 동료 운동가인 타기 라흐마니와 16살 쌍둥이 자녀 알리, 키아나는 현재 프랑스에서 망명 생활을 하고 있다. 모하마디는 잦은 투옥에 자녀들을 8년째 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상 당시 라흐마니는 “부당한 법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수십 년 동안 이란의 변화를 위해 싸워 온 모든 인권 운동가들에게 주는 상”이라며 대신 감사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63세의 한 이란 여성은 닛케이아시아에 “노벨 평화상 수상은 이란 여성 지위에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며 “히잡 착용 같은 문제보다 여성의 경제적인 복지가 더 중요하다”고 꼬집었다.
전직 기자 출신의 또 다른 시민은 “안타깝게도 수년간 노벨 평화상은 적절한 사람에게 수여되지 않았고, 수상은 해당 국가 시민들을 진정시키는 상징적인 제스처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2003년 수상자인 에바디의 수상 후 공로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한 시민은 “수상 후 그는 전 세계를 여행하며 강연했지만, 실질적으로 이란인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수상 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성명을 내고 “흔들리지 않은 그의 용기에 축하를 건넨다”며 “이란 정부에 그와 그의 지지자들을 즉각 석방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과거 사례를 보면 그의 석방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섯 번의 옥중 수상 가운데 단 한 차례도 수상 직후 석방은 없었다고 한다. 미얀마의 아웅산 수치 여사는 1991년 수상했지만 2010년이 돼서야 석방됐다. 그마저도 이후 가택연금으로 전환했고 현재도 군부 쿠데타로 재판을 받는 처지다. 사망하기 전까지 가족과 동료에게 돌아가지 못한 수상자도 두 명이나 된다.
석방의 어려움은 이란 정부 반응에서도 드러난다. 나세르 카나니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성명을 내고 “그는 테러단체와 협력하고 반국가 활동을 저지른 인물”이라며 “노벨상 수상은 편향적이고 정치적”이라고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