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졸중 환자 이송 단축·의료협력 컨트롤타워 절실”…이경복 뇌졸중학회 정책이사 [인터뷰]
“아무런 대가 없이 365일 24시간 ‘온콜’을 자처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촌각을 다투는 ‘뇌졸중’ 환자를 치료할 전문의가 사라지고 있다. 열악한 인프라 속에서 응급 환자를 감당해야 하는 악조건을 피해 의사들이 떠나는 것이다. 신경과 내부에선 치매와 파킨슨병 등 만성·퇴행성 질환이, 의료계 전체에서는 피·안·성(피부과, 안과, 성형외과)이 인기를 끄는 동안 뇌졸중 전문가는 대가 끊길 위기다.
이경복 대한뇌졸중학회 정책이사(순천향대서울병원 신경과 교수)는 “현재 교수들이 은퇴하고 후배 의사들로 세대가 교체되면, 뇌졸중 환자를 치료할 인력이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라고 우려했다.
본지는 최근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서울병원 신경과 진료실에서 이 교수를 만나 국내 뇌졸중 치료 인프라에 필요한 응급조치를 짚어봤다. 이 교수는 “뇌졸중 치료의 특성을 반영한 네트워크와 수가체계를 도입해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뇌졸중은 뇌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이 막히거나 파열돼 뇌 손상을 유발하는 질환이다. 뇌는 한 번 손상되면 회복되지 않기 때문에 뇌졸중 치료는 신속성이 핵심이다. 늦어도 6시간 이내에는 뇌혈관 속 혈전을 제거하거나 출혈을 멈출 수 있는 전문의가 근무하는 의료기관에 도달해야 한다. 치료가 지연될수록 환자는 마비, 언어장애 등 삶의 질을 크게 저하시키는 손상을 입게 된다.
신속한 치료를 담보하는 조건은 이송 시간을 단축하는 네트워크와 충분한 전문 인력이다. 안타깝게도 현재 한국은 두 조건 모두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이 교수의 진단이다.
특히 119구급대원의 역량과 운에 따라 환자 운명이 좌우된다. 119와 의료기관 사이의 네트워크가 없고, 각 의료기관의 운영을 조율할 컨트롤타워도 없기 때문이다. 환자가 무사히 건강을 회복하려면,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급대원이 뇌졸중 증상을 눈치챌 만큼 훈련이 돼 있어야 하며, 해당 구급대원이 향한 첫 번째 병원에 뇌졸중을 치료할 수 있는 전문의가 근무 중이어야 한다.
이 교수는 “응급구조사와 119대원들도 일정한 교육을 받으면 뇌졸중 증상을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다”라며 “현재 대한뇌졸중학회가 몇몇 지역 119와 협약을 맺고 구급대원들을 대상으로 뇌졸중 증상, 환자 분류, 응급조치 방법 등을 교육하고 있지만, 정부가 지원하는 공식적인 교육 과정은 없다”라고 말했다.
현재 보건복지부는 전국에 14개 의료기관을 ‘권역심뇌혈관센터’로 지정하고 뇌졸중 환자 진료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하지만 각 의료기관의 공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개별 의료기관이 연중 24시간 전문의를 근무시키기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뇌졸중 치료 시설과 인력을 총체적으로 조율할 구심점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 교수의 의견이다.
이 교수는 “병원에 뇌졸중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전문의가 있는지, 그 전문의가 현재 근무 중인지 또는 호출 가능한지 119 구급대원들과 각 병원이 일일이 확인 전화를 걸어 파악하고 있다”라며 “이송 시간을 단축하고 권역 내 의료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려면 중앙 컨트롤타워가 있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젊은 의사들이 뇌졸중 분야로 유입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인프라가 열악한 만큼, 뇌졸중을 치료하는 전문의들의 업무 강도는 높다. 응급으로 실려 오는 환자들이 대부분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365일 병원에 달려갈 준비가 된 상태로 지내야 한다. 동료와 번갈아 당직 근무를 하는 다른 진료과와 비교해 피로도가 높지만, 별다른 보상은 없다. 이 교수는 정책수가를 도입해야 다음 세대 전문의를 양성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 교수는 “뇌졸중을 보는 신경과 전문의는 당직 근무일에 해당하는지와 관계없이 매일 대기 상태로 지내지만, 그에 대한 보상은 주어지지 않는다”라며 “야간에 환자가 실려 오면 신경과 전문의가 자신의 영역이 아닌 검사와 영상 분석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지만, 이런 과정 역시 보상 없이 수행한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대기 수가를 도입하면 전문의에 대한 보상을 현실화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아직 국내에서는 대기 수가를 도입한 전례가 없고, 타과와 형평성 문제도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설명했다.
뇌졸중은 사회적 질병 부담이 높은 질환으로 꼽힌다. 환자가 생명을 지킨다고 해도 평생 장애를 갖고 살아가게 될 위험성이 높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국내 뇌졸중 발생 나이는 40~50대로 낮아지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는 생애주기 중 자녀를 양육하면서 소득과 지출이 가장 높은 시기에 해당한다. 뇌졸중 환자 1명이 발생하면, 환자의 배우자와 자녀 모두의 일상에 타격이 있는 셈이다.
이경복 교수는 질병의 특성을 정교하게 분석하고, 이에 근거해 지원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가 어떤 분야에 의사가 얼마나 부족한지, 필요한 지원은 무엇인지, 지원의 비용과 효과는 어느 정도로 예상되는지 제대로 파악하기를 바란다”라며 “젊은 세대 의사들이 업무의 난이도가 높고 피로해도, 환자를 치료하는 보람에 뇌졸중 분야를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라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