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심까지 17억 손해배상 판결…대법 “파기환송”
화재사고 유족에 지자체 배상책임 쟁점
대법 “조사 항목‧범위 따져서 심리해야”
‘의정부 아파트 화재 사고’ 피해자 유가족들이 경기도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최종 패소할 가능성이 커졌다. 대법원이 소방특별조사 때 경기도 과실을 인정해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원심 판단을 뒤집었기 때문이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의정부 아파트 화재 피해자 유족들이 경기도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17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돌려보냈다고 22일 밝혔다.
2015년 1월 10일 오전 9시 16분께 경기도 의정부시에 위치한 주거용 오피스텔 ‘대봉그린 아파트’ 1층에서 발생한 화재로, 이 아파트에 살던 주민 4명이 사망하고 100여 명이 다쳤다. 현장 감식 결과 화재 시 문을 자동으로 닫아주는 장치(도어클로저)가 설치되지 않은 방화 문을 통해 건물 내부와 상층부로 불이 확산된 것으로 밝혀졌다.
앞서 경기도는 2013년 12월 관내 특정소방대상물에 대한 소방특별조사를 실시했는데, 당시 경기도지사와 의정부소방서장의 소방특별조사 계획에는 소방시설법령에 따른 소방시설 등을 조사항목으로 했을 뿐 방화문 등 방화시설은 조사항목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그 이듬해인 2014년 10월 15일 의정부소방서 소속 소방공무원들은 해당 아파트에서 소방특별조사를 진행했다. 소방공무원들은 3층부터 10층까지 계단실 앞 방화 문에 건축법령을 위반해 도어클로저가 설치돼 있지 않은 사실을 적발하고도 시정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에 망인들의 유족들은 경기도를 상대로 소방공무원이 소방특별조사 때 방화 문에 도어클로저가 설치되지 않은 것을 조사 및 시정조치하지 않은 과실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를 제기했다.
1심 법원은 원고들 청구 일부를 인용했고 2심 역시 패소 부분을 항소한 피고 청구를 기각했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옛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구 소방시설법)에 따른 소방특별조사를 실시하는 소방공무원에게는 방화시설 중 일부인 방화문의 설치 및 유지, 관리에 대해 조사하고 시정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으므로, 이를 소홀히 한 소방공무원에게 직무상 과실이 있다고 판단했다.
피고가 패소한 부분에 대해 상고했는데, 대법원이 파기‧환송하면서 2심까지 손해배상 책임 결론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구 소방시설법은 소방특별조사의 세부항목에 관해 ‘소방안전관리 업무 수행에 관한 사항’, ‘소방계획서의 이행에 관한 사항’ 등을 규정하고 있을 뿐 방화시설을 기본항목으로 삼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다만 ‘소방특별조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구 소방시설법에 따른 방화시설의 설치‧유지 및 관리에 관한 사항을 조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라고 부연했다.
따라서 방화 문에 도어클로저가 설치됐는지 여부는 방화시설의 설치‧유지 및 관리에 관한 사항으로 구 소방시설법령에 따라 소방특별조사를 실시하는 경우 반드시 조사해야 하는 항목이 아니라 조사 목적 달성을 위해 필요하다면 조사를 실시할 수 있는 항목에 해당한다고 대법원은 판시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 소방특별조사 당시 조사항목에는 방화시설의 설치‧유지 및 관리에 관한 사항이 포함돼 있지 않았으므로, 소방공무원이 방화 문에 도어클로저가 설치돼 있는지 여부를 조사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직무상 과실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구 소방시설법령에서 정한 소방대상물에 대한 소방특별조사의 조사항목 범위에 대해 최초로 명시적으로 설시했다”고 설명했다.
박일경 기자 ek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