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방·개인 맞춤 치료 위한 신기술 적극 도입 [초고령사회, 의료AI 온다⑧]
국내 헬스케어 산업계는 초고령화와 함께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첨단 기술 등장으로 큰 변화의 시기에 진입했다.
7일 주민등록 인구통계를 보면 지난달 기준 국내 65세 이상 인구는 1002만4468명으로 1000만 명을 돌파했다. 글로벌 시장 조사기관 마켓앤마켓은 한국의 인공지능(AI) 헬스케어 시장 규모가 2023년 3억7700만 달러(약 4980억 원)에서 2030년 66억7200만 달러(8조8080억 원)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헬스케어 산업계가 이러한 환경 변화에 선제 대응하기 위해서는 민·관·학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본지는 최근 국내 헬스케어 산업 대전환 전략 모색을 위해 정부·의료기관·기업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전문가로는 △고형우 보건복지부 첨단의료지원관 △한승범 상급종합병원협의회장(고려대안암병원장) △김영웅 한국디지털헬스산업협회장(룰루메딕 공동대표)이 참여했다.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면 만성질환과 퇴행성질환은 물론, 암과 같은 중증질환자도 증가하게 된다. 국민 건강관리의 목적은 질병이나 장애 없이 약에 의존하지 않고 살아가는 ‘건강수명(healthspan)’ 극대화에 집중된다. 따라서 초고령화라는 인구 구조의 변화는 국내 헬스케어 산업계에 위기이자 기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고형우 지원관은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고령화에 따른 의료비 증가세가 가장 급격하고, 지역 의료서비스 접근성 격차도 크다”라며 “정부는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맞춤형 의료나 건강관리를 위한 의료데이터 분석 및 AI 기술 개발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고 지원관은 ‘건강정보 고속도로’와 ‘K-CURE’를 꼽았다. 그는 “건강정보 고속도로 사업을 통해 병원 전원, 약국 이용, 건강검진, 해외여행 등 일상 속에서 의료데이터를 조회, 저장, 전송할 수 있으며, 국가통합 바이오빅데이터와 암 진단·치료, 사망 데이터까지 연계한 K-CURE 빅데이터를 구축해 정밀의료를 실현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승범 협의회장은 초고령화 사회를 순조롭게 맞이하기에는 준비가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초고령화는 각종 질환에 대한 치료 및 수술, 중환자실, 돌봄서비스 등의 의료수요를 급격하게 증가시킬 것으로 예상되지만, 국내 의료체계는 현재의 수요를 막기에 급급한 상황이다. 미래를 위한 심도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한 협의회장은 분업과 기술 도입을 강조했다. 그는 “종별 역할을 세분화해 의료시스템이 환자들의 수요를 효율적이고 안전하게 소화할 수 있도록 하고, AI 등 컴퓨터 기술을 이용해서 사람이 해야 할 일을 기계로 대체하는 등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김영웅 회장은 “의료와 비의료,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아우른 디지털헬스 영역에서 AI가 필수요소로 자리매김하는 추세”라며 “세계적으로 디지털헬스는 초기 단계이나 고속 성장하고 있고, 정부 주도로 국내 연구개발(R&D)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김 회장은 산업계와 국민을 위한 세심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김 회장은 “융복합 신산업이라는 특성상 사회 확산을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과 정책적 마중물 지원이 필요한 때”라며 “디지털 리터러시(읽고 쓸 수 있는 능력)가 낮은 고령층을 위해 국민 체감형 디지털헬스 제품 및 서비스 확산을 통한 지불 주체의 다각화도 요구된다”고 제언했다.
AI기술은 헬스케어 서비스에 접목되면서 진료와 연구에 혁신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질병 진단, 환자 모니터링, 신약개발 등의 분야에서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어서다. 특히 한국은 방대한 양과 고품질의 공공의료데이터가 있어, 시너지 효과가 클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개인정보 보호와 안전성 이슈는 풀어야 할 숙제다.
고형우 지원관은 산업 발전을 위한 규제 완화도 중요하지만, 필요성과 안전성에 기반을 둔 신뢰 구축이 먼저라고 피력했다. 그는 “개인정보 보호와 보건의료데이터 활용이라는 중요한 두 가치 사이의 긴장 관계를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보호와 활용의 균형을 담고 있는 ‘디지털헬스케어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법률이 제정되면 보건의료데이터 개방 및 활용 범위를 명확히 하고, 악용을 차단하는 등 안전관리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 협의회장은 AI를 통한 디지털 헬스케어 솔루션이 의료계 일손 부족을 극복할 대표적인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현재 대학병원들을 비롯해 많은 국내 병원들이 AI를 이용한 디지털헬스케어를 연구하고, 임상 도입을 위해 노력 중”이라며 “디지털화 및 클라우드화된 전자의무기록(EMR)과 의료데이터가 필요하며, 국가적 차원의 개인정보보호 시스템이 준비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 회장은 개인의 데이터 통제권을 강화해야 산업도 발전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국가통합 바이오빅데이터 구축과 개방도 중요하지만, 디지털헬스의 발전 속도를 고려하면 지금이 글로벌 경쟁력의 우위를 가를 분수령”이라며 “의료 마이데이터 활성화를 통한 개인의 데이터 통제권 강화가 뒷받침돼야 AI 기반 디지털헬스의 글로벌 경쟁력이 생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개인정보 보호 강화와 의료데이터 활용은 대립하는 가치가 아니라는 것이 김 회장의 의견이다. 그는 “개인정보 보호라는 토대 위에서 데이터 생태계가 성장해야 하는데, 현재는 의료데이터의 성격에 맞는 보호 정책이 없거나 모호하다”며 “기관과 병원이 보유한 데이터는 철저한 익명화와 암호화가 중요하고, 개인의 의료데이터셋은 정보 주체가 건강증진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ISMS-P(정보보호 및 개인정보보호 관리체계)와 같은 프라이버시와 권리 요구가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헬스케어 서비스의 미래 트렌드로 예방과 정밀의료가 주목을 받고 있다. 예측으로 질환 발병을 막고, 환자 개인에게 최적화된 치료를 제공해 건강수명을 연장한다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서는 신기술을 빠르게 도입하면서도 안전성을 철저히 검증하는 ‘묘수’가 필요하다.
고형우 지원관은 기술의 발전과 규제의 온도차를 줄이기 위한 조건으로 국민의 신뢰와 합의를 강조했다. 그는 “현재는 산업 관련 부처에서 운영하고 있는 규제샌드박스를 통해 보건의료 관련 신기술 도입이 검토되고 있다. 전체적인 규제 완화 현황 관리가 어렵고, 보건의료 분야 일관된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라며 “디지털헬스케어법에는 국민의 생명·건강·안전 저해에 우려가 없는 범위 내에서 새로운 기술의 진입을 검토하는 디지털헬스케어 분야 규제샌드박스에 대한 내용도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한승범 협의회장은 역량을 갖춘 의료기관에서 우선 신기술을 도입하고, 객관적 검증을 통과한 기술을 국민에 보급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는 “의료 신기술의 인허가 과정에서는 일반적으로 한시적인 허가를 해주는 방식이 취해진다”며 “의료 분야에서 신기술을 안전하고 정확한 방향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상급종합병원 등 교육 연구 기관을 중심으로 이를 먼저 시행하고, 정확한 치료 데이터를 얻은 이후에 국민에게 보급되도록 하는 형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영웅 회장은 규제를 위한 과학이 아닌, 과학을 위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상대적으로 위해도가 낮고, 융합 신산업이라는 디지털헬스의 산업적 특수성을 반영한 규제 합리화와 규제 혁신 속도 향상이 혁신을 견인한다”며 “디지털헬스산업의 법제화 역시 규제법이 아니라, 육성과 탈규제에 집중한 진흥법이 제정되도록 컨센서스를 모아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