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최종 계약 불발, 자금 문제만은 아냐”… 최소한의 검토 자료도 못 받아
한화그룹이 2008년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잃은 3000억 원대 이행보증금 회수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산업은행과의 인수 분쟁 소송을 두고 대법원이 한화그룹 측의 의견을 일부 받아들여 재판을 다시 하라고 돌려보냈다. 분쟁 소송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면서 재계는 한화그룹이 이행보증금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부를 돌려받을 가능성이 커진 것으로 보고 있다.
대법원 2부는 14일 한화케미칼이 한국산업은행과 한국자산관리공사를 상대로 낸 이행보증금 반환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한화그룹은 2008년 6조3002억 원을 들여 산업은행이 보유한 대우조선해양 주식 9639만 주를 사들이기로 하고 이행보증금 3150억 원을 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였던 당시 한화는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3조8000억 원만 자체 조달하고 2조5000억 원은 5년 뒤 지급하겠다는 자금조달계획을 제출했다. 한화는 본 계약 체결 전 회사에 대한 실사 진행을 요구했으나 대우조선해양 노조의 반대로 무산됐다.
산업은행은 결국 2009년 1월 자금조달계획안이 양해각서에 위반되는 등 한화의 귀책사유로 최종계약이 체결되지 못했다며 양해각서를 해제한다고 통보하고 보증금을 몰취했다. 이에 한화는 2009년 6월 대우조선에 대한 확인 실사를 못한 점, 국내금융시스템이 마비로 금융거래가 중단돼 거래를 종결할 수 없었던 점 등을 들며 산업은행에 양해각서를 해제한다고 통보했다.
이후 한화는 산업은행에 이행보증금을 돌려달라며 조정신청을 냈지만 결렬되자 2009년 11월 소송을 냈다. 그러나 한화는 1·2심에서 연달아 패소했다. 재판부는 “확인 실사는 반드시 최종계약체결 전에 선행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이행보증금을 한화에 돌려줄 필요가 없다고 산업은행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최근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 논란 등 불투명한 경영 관행과 대주주인 산업은행의 부실 관리가 도마에 오르면서 분위기는 역전됐고 결국 대법원은 재판을 다시 하라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한화그룹 측은 “당시 금융위기로 자금 조달비용이 늘어난 것은 맞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자금문제가 최종계약 무산의 원인은 아니다”라며 “대우조선해양 인수 확정 후 확인 실사를 하지 못한 상황에서 최종계약체결 전 검토가 필요했던 최소한의 자료도 받지 못했던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일각에서 말하는 자금부족에 따른 대우조선해양 인수 포기는 사실과 다르며, 대우조선 노조의 반대가 극심했고 대우조선 측에서도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게 더 큰 문제라는 것이다.
그룹은 이어 “파기환송 판결문을 입수해서 보아야겠지만 상고의 취지를 인정해 준 대법원의 결론을 존중하고 파기환송심에서 성실히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